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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서 숙취해소제 팔기

강남 한복판에서 숙취해소제 팔기

@류제국 님의 “대학교 축제에서 잡상인이 되어보자” 메이커로그를 보고, 저도 동일하게 숙취해소제를 팔았던 경험이 있어 회고해 봅니다.

‘강남에서 숙취해소제 팔기’의 시작

저는 ‘garage’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젊은 영혼들이 이것저것 사업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 곳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남겨 보겠습니다)

때는 올해 초였습니다. 아끼는 동생 M이 입대 2주를 남기고 가출해서 ‘garage’로 왔습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garage’에서 지낼 수 있는 규칙은 바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작 2주 안에 할 수 있는 사업을 찾기로 했습니다. 2주 안에 실행 가능한 거의 유일한 BM은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였죠. 그래서 뭘 팔지를 고민하던 중….

강남 한복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저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초콜릿을 팔고 계셨죠. 그 모습을 보고 제 머릿속에 아래와 같은 가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강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그들에게 숙취 해소제를 가져다 주면 구매할 것이다.”

이제 해당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저와 동생 M, 그리고 ‘garage’에 살던 J까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숙취해소제를 팔 준비

  1. 쿠팡에서 숙취해소제 약 30만원 정도를 구매했습니다.

  2. 액체 형태의 숙취해소제를 차갑게 유지하며 운반을 위해 수레 및 얼음팩을 구매했습니다.

  3. 판매 판넬을 만들었습니다.

  1. 구매하는 분들의 편의를 고려해 무려 카드 리더기를 대여했습니다.

이렇게 무려 카드 결제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결제와 호객, 메뉴 안내까지 역할을 명확하게 나눴습니다. 심지어는 수익 배분에 대한 동업자 계약서도 나름대로 작성하고, KPI까지 세워 숙취해소제 x개 이상 판매하여야 한다는 목표도 설정했습니다.

첫 번째 실행

완판의 부푼 꿈을 안고 강남 한복판 거리로 향했습니다. 눈에 띄는 판넬을 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인사를 하며 호객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거의 2~3시간 여를 강남 거리를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고작 만 원, 두 명의 고객에게 팔았습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커다란 ‘숙취해소’ 판넬을 매고 접근하면 고객들은 아래와 같은 반응들을 보입니다.

  1. 무시한다.
  2. 안 산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급히 자리를 피한다.
  3. ‘화이팅!’과 같이 응원해주시고 하이파이브도 해주신다. 단,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4. 왜 이러고 있냐고 물어보신다. 이 경우도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5. 숙취해소제를 공짜로 달라고 요구한다. 이 경우 이미 술에 많이 취한 상태이다.
  6. 극히 적은 확률로, 가격을 물어보고 구매한다.

구매로의 전환율이 너무나 떨어졌습니다. 관심은 가져도 구매까지 이루어지는 행위가 무척이나 드물게 나왔습니다.

구매 전환율을 개선하기 위해, 구매가 적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는 식당에 들어가서 판매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출이 저조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연하게도 술을 먹고 있는 고객에게 숙취해소제를 가져다 드려야 구매 확률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면 엄연한 ‘영업 방해’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만 팔았던 것입니다. 팔아보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숙취해소제를 보고 사람들이 식당에서 나와 구매할 줄 알았지만,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바깥을 보지 않습니다. 먼저 인사를 해도 못 본 척 무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습니다)

두 번째 실행

그렇게 두 번째 실행의 모든 부분은 ‘식당 내 진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구상한 전략은 바로 ‘전화 주문’입니다.

숙취해소제 메뉴와 전화 번호, ‘편의점보다 싸다’가 적힌 명함을 제작합니다. 이 명함을 길거리 뿐만 아니라 창문 등을 통해 음식점 안까지 최대한 뿌립니다. 몇몇 명함에는 공짜 컨디션 환을 붙여, ‘한 사람만 숙취해소제를 먹기 애매한 상황’까지 만들어서 주문을 유도합니다. ‘최초의 전화 주문’이 일어나면 배달을 위해 식당에 진입합니다. 그 과정에서 식당 내 모든 사람들에게 큰 판넬을 통해 자연스럽게 광고를 하고, 나오는 길에 역시 명함을 각 테이블마다 전달합니다. 그리고 밀려 드는 전화 주문… 바빠지는 카드 리더기… 강남 밤거리 안에서의 네트워크 효과… SNS로 공유되어 바이럴까지…. 가 예상(희망) 시나리오 였습니다.

위 시나리오는 정확히 ‘최초의 전화 주문’ 전 까지 완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명함과 공짜 숙취해소제를 뿌리고 또 뿌려도 전화 주문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습니다. 명함과 공짜 숙취해소제를 받은 사람들은 추가로 구매를 하는 것이 아닌, 공짜로 더 주기를 요청하거나 짜증을 내고, 심지어는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화 주문이 없으니 식당에는 전혀 진입하지 못했고, 그렇게 ‘강남 한복판에서 숙취해소제 팔기’는 대실패했습니다. 😂

배우고 느낀점

  1. 더 싸게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카드 리더기라던가, 어마어마한 양의 숙취해소제는 필요 없었죠. (아직도 숙취해소제가 쌓여 있어요 ㅠㅠ) 수레도, 아이스박스도 필요 없이 그냥 판넬만 만들어서 팔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설 검증을 할 때는 항상 더 싸고 더 빠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2. 완벽한 계획보다는 빠른 실행이 대체로 이득이라고 느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숙취해소제를 팔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고 팔았다면 아마 훨씬 더 큰 시간적,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 빠른 실패여서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3. 대중의 관심을 끌어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강남의 클럽 앞에서 거대한 ‘숙취해소’ 판넬을 매고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돌아다녀도 눈길조차 안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PMF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마케팅을 하여도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겠죠…

숙취해소제, 그 이후

숙취해소제 판매가 실패로 끝나고, 동생 M은 군대에 갔습니다. 사실 숙취해소제 사건으로 사업의 재미에 크게 자극을 받고 군대를 미루고 창업을 하려 했으나, 병무청이 허락하지 않아….. 현재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형 J는 학생들의 입시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게임 PPL 솔루션’을 만들며 새로운 마케팅을 꿈꾸고 있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일을 하고 있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숙취해소제를 팔아본 경험은 ‘뭐든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더불어 저는 그 이후로 낯을 전혀 가리지 않게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아직도 쌓여 있는 숙취해소제를 가져가고 싶으신 분들은 ‘garage’로 놀러오세요!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